“수액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다”
수액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람
성천 이기석 선생은 1945년 조선중외제약소(現 JW중외제약)를 창업한 뒤 생명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의약품 개발에 전념하여 1959년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수액제를 국산화하는 등 국내 치료 의약품 산업의 초석을 다지는데 앞장서 왔다.
1910년 3월 17일,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그는 성장하면서 일찍이 부친의 영향으로 생명과 인화를 중시하는 한학과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부처님의 자비를 사상에 심취했다. 이와 같은 양대 사상에 기초를 둔 성천은 “생명을 다루는 제약기업은 모름지기 이윤에 앞서 약다운 약만을 생산해야 한다”는 생명존중의 정신으로 편하고 쉬운 길을 마다하고 환자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수액과 의약품 생산에 자신의 일생을 바첬다.
1960년대 이윤이 박한 수액제 생산으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이기석 선생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치료제 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64년 “하트만”, “엘알긴 주사제” 개발을 시작으로 국내 최초로 항생제 “겐타마이신” 개발에 성공했고 69년 항생제 “리지노마이신” 합성에 속속 성공해 국산 항생제 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72년 당시로서는 최첨단 항생제인 “피바록신”의 원료 합성에 성공해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성천은 국민 건강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69년 단 한 사람의 수술을 위해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수술에 반드시 필요한 복막투석액 생산에 매달려 국내최초 신장이식 수술에 크게 기여 하였다. 70년대 히트상품으로 어려운 경영환경 타개의 일등공신이었던 쥐약 “후라킬”을 “생명을 죽이는 약” 이라는 이유로 제품 허가를 자진 취하하기도 했다.
인류의 3대 의료혁명 중 하나인 수액제 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기석 선생은 75년 타계 이후 23년 만에 제5회 창업대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성천 이기석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JW는 지금도 수액을 비롯한 필수 치료의약품 공급에 집중하면서 공익 우선의 비즈니스를 펼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